버킷 리스트라고 하기는 좀 오버이지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 해 오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나름 돈이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는 않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조금 어려운.. 그런 것들이죠.
후자에 해당하는 것 중 하나가 "천문대에서 은하수와 별 보기" 였습니다.
군대에 있었을 때 훈련 중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과 은하수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보기는 저에게 하나의 로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강원도 화천에 "조경철 천문대" 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은하수와 별 관측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언젠가는 꼭 가자고 메모를 해 놓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었습니다.
일단 별과 은하수를 보려면 1) 하늘에 달이 없어야 하고 (별과 은하수 관측의 가장 큰 적은 빛입니다) 2) 맑은 하늘이어야 하며 (우리나라는 1년의 2/3이상 하늘에 구름이 있는 것 같아요) 3) 미세먼지나 안개 등이 없어야 하는데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해도 천문대까지 차로 2시간이 넘게 걸리고 새벽에 운전해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심을 하지 못했던 거죠.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이번 주 마침 회사 휴가와 위의 3개 사항이 모두 만족되는 환경이 겹쳐서,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하고 혼자 다녀 오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같이 하면 좋겠으나 심야관측은 중학생 이상만 신청이 가능하더군요.)
간단한 간식거리, 물, 카메라와 삼각대를 차에 싣고 화천으로 출발했습니다.
하필이면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혀서 서울 시내에서만 한시간 가까이 소비하고 북부간선도로, 구리-포천 고속도로를 통해 포천 이동, 백운계곡을 지나 조경철 천문대에 도착했습니다. 두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네요.
원래는 광덕고개부터 천문대 까지 올라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였다고 하는데, 최근에 도로 포장공사를 했는지 천문대 까지 올라가는 산길의 70% 정도는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일반 승용차로 올라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조경철 천문대는 해발 1000미터 정도의 광덕산에 위치하고 있고 경기도 포천, 강원도 철원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밤 10시 10분정도에 도착해 보니 주차장에 10대 남짓 차가 있고 개인 장비로 별 촬영 및 관측을 하시는 분들이 여럿 계시더군요. 심야관측은 11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남는 시간동안 조경철 박사님의 기념관을 잠깐 둘러본 후 기상관측소로 가는 길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며 밤하늘을 구경 했습니다.
사진을 신나게 여러 장 찍었는데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카메라 초점잡기 였습니다. 그냥 안일하게 무한대쪽 끝에 초점링을 맞추고 찍으면 되겠지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초점이 하나도 안 맞았더군요.
카메라가 구형이라 액정으로 별사진 촛점을 확인하기는 좀 어려우니 미리 낮에 무한대로 촛점을 맞춰 놓던가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사진 촬영은 전부 실패했습니다.
촛점만 맞았으면 좋은 추억의 사진이 되었을 텐데요...
사진 촬영은 실패했지만 주차장에서 본 밤하늘은 아주 아름다워서 두 시간 넘게 운전하고 온 피로를 날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을 밤이라서 은하수의 중심 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흐릿하게나마 은하수도 볼 수 있었고요.
11시에 천문대 안내데스크로 가자 다른 신청자 분들과 스탭 분들이 이미 모여 있었습니다. 혼자 온 사람은 저 하나였고 대부분 2명씩 전체 10명 정도의 신청인원이 있었습니다.
직원분께 체험비 2만원을 지불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천문대 대장님이 오셔서 일정 설명을 하고 바로 관측을 위해 3층으로 이동 하였습니다.
대장님은 절반 정도 머리가 희신 분이었는데 이런 체험 행사를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하셨을 텐데도 아주 열정이 넘치게, 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체험자 분들을 위해서 자세히 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3층에는 직경 1미터의 주망원경 (돔 시설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및 여러 대의 소형 망원경이 있었습니다. 관측 대상에 따라서 주 망원경과 소형 망원경, 그리고 육안 관측을 번갈아가며 가을 밤하늘의 여러 천체를 관측하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새벽 1시가 되어 관측이 끝나고 나서는 로비로 돌아와 따뜻한 믹스 커피를 제공해 주시고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 주시는데 그 뒷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꼭 한번 더 참여해 보고 싶은 좋은 경험이었네요.
관측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에 그날 관측한 천체의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올려 봅니다.
주 망원경으로 관측했떤 해왕성 입니다. 관측일에 하늘에 떠 있던 태양계 행성이 2개 뿐이었고 (화성 / 해왕성) 화성은 고도가 낮아 주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없었기에 해왕성을 관측하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망원경으로 본 모습은 이 사진의 10분의 1정도도 안 될것 같습니다.
비록 목성이나 토성같은 스펙타클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별과는 다른 면적과 색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흔치 않은 외행성을 직접 눈으로 관측할 수 있어서 저는 참 좋았습니다.
정확하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산개성단도 관측했는데요, 큰 배율의 망원경으로 관측해도 별의 크기는 전혀 커지지 않고 점으로 보인다는 게 이론으로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신기하게 느껴 졌습니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육안 관측도 가능한데요, 고배율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시야각이 좁아져서 그 일부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위와 같은 사진은 눈으로 보는 모습과 많이 다른데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그냥 뿌연 구름처럼 보이더군요.
역시나 눈으로 관측 가능한 천체인 플레이아데스 성단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멋진 모습까진 아니지만 저배율 망원경으로 보면 밝은 별 근처의 작은 별들도 잘 보이더군요.
이 이외에도 화성, 은하, 구상성운 등 많은 천체를 관측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육안 관측을 하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유성 (별똥별) 도 관측했고요.
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추천 드리고 싶은 경험이었습니다.